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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배달원

나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취준생이다.
요즘 코로나 상황이라서 그냥 부모님께 뭐라도 하는 것을 보여주려 도서관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다.
5시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약속이 있어 나가셨고 아버지만 계셨다.
아버지는 맛있는 것 시켜 먹자고 하셨다.
돈도 못 벌면서 부모님 돈으로 저녁을 때워야 하는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함께 소주 한잔하자고 하셔서 족발과 쟁반국수를 시켰다.

그런데 시킨 지 1시간이 넘는데도 음식은 도착하지 않았다.
난 조금 짜증이 나서 족발집에 전화를 걸었다.
떠난 지 30분이 넘었는데 이상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라는 생각으로 아버지와 어색하게 TV를 보며 30분을 더 기다렸다.
그제야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좀 따지려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배달 온 사람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에 홀딱 젖어있었고, 대뜸

'죄송합니다. 오던 길에 빗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수습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음식은 먹기에 민망할 정도로 불어있었고 또 엉망이 되어있었다.
뭐라 한마디도 못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현관으로 나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음식을 시킨 저희 탓입니다.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당신의 책임감으로 오늘 우리 부자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음식값과 세탁비까지 건네주었다.
그러자 배달원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고마울 일이 하나 없는 코로나와 무직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왔다.


"절대 절대 절대로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하찮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걸 항상 고맙게 생각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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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실수에 관대할 줄 아는 삶을 살 수 있기를.